묵상의 첫 걸음이 본문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걸음은 분명하다.
그 본문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 “이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 “오늘 내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물론 적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면 묵상은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흐른다.
묵상의 첫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이 본문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어떻게 계시하고 있는가?”
1. 나를 먼저 대입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찾으라
성경은 인간 중심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는 책이다.
묵상 본문에서 찾아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은 무엇을 지켜보시고 무엇을 행하시는가?
- 예수님은 어떤 태도와 권위를 보이시는가?
-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심판하시는가?
이 과정을 건너뛰고 “그래서 나는?” 으로 바로 넘어가면, 말씀은 나를 돕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면, 오히려 나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나님을 알수록 내가 보인다
-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면, 나의 죄성이 드러난다.
-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면, 나의 조급함이 드러난다.
- 하나님의 공의를 보면, 나의 타협 드러난다.
하나님의 성품을 찾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길이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는 시각
구약 본문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삼위일체적 시각으로 읽는다.
- 성부 하나님: 주권, 심판, 공의, 구원 계획
- 성자 예수 그리스도: 중보, 구속의 방향성
- 성령 하나님: 보호, 제지, 인도, 깨우침
모든 본문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동일한 방식으로 명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성품과 사역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3. 예시: 창세기 19:1–11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나는가?
본문을 단락별로 살펴보자.
(1) 1–3절: ‘방문하시는 하나님‘
두 천사가 소돔에 들어오고, 롯이 영접한다.
여기서 우리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은 멀리서 심판만 선언하시는 분이 아니라, 현장에 개입하시는 분이다.
- 하나님은 인간의 현실 속으로 들어오신다.
- 하나님은 의인을 기억하시고 찾아오신다.
- 심판 직전에도 방문하신다.
이 모습은 훗날 성육신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적으로 비춘다.
(2) 4–5절: ‘죄악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소돔 사람들이 집을 에워싸고 악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죄를 방치하지 않으신다.
숨겨진 죄가 드러나도록 상황을 허락하신다.
-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 사회적 타락이 구조화되었을 때 반드시 개입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본다.
(3) 6–8절: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롯은 두 딸을 내어주겠다고 말한다.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단락은 인간의 도덕적 혼란을 보여 준다.
- 의로운 자라 불리는 롯도 완전하지 않다.
- 위기의 순간, 인간은 쉽게 왜곡된 선택을 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을 보지 않으면, 인간의 실패는 이해되지 않는다.
(4) 9–11절: ‘보호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
천사들이 롯을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사람들을 눈멀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성품을 본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신다.
-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손길이 먼저 작동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준다.
5. 묵상의 방향을 다시 세우라
정리해 보자.
묵상의 두 번째 걸음은 다음과 같다.
-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찾는다.
- 하나님의 행동을 관찰한다.
- 삼위 하나님의 구속적 방향을 읽는다.
순서를 지키면 묵상은 깊어진다.
묵상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정확히 볼 때
비로소 나 자신도 정확히 보인다.
묵상의 중심은 언제나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으라.
그때 말씀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